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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AI 활용
다섯 AI로 차린 야간 사무실 — 서식 네 장으로 공모 1,089건을 훑고 원고 192편을 쓴 운영기
👤 지혜로운기린928 📅 2026-08-29 👁 조회 50
AI로 차린 야간 사무실로 공모전 자동화
제목: 다섯 AI로 차린 야간 사무실 — 서식 네 장으로 공모 1,089건을 훑고 원고 192편을 쓴 운영기


1. 계기 — 상장 한 장이 숙제를 남겼다

올해 「2026 GREAT SERVICE FOR YOU WITH AI」 공모전 개인 부문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제출한 것은 「역할 분담형 멀티 AI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한 개인 업무 방식 혁신 사례」라는 제안서였다. 여러 AI에게 각자 다른 역할을 주고, 사람 회사에서 쓰는 인수인계 서식으로 그 사이를 잇는다는 아이디어였다. 아이디어 자체는 AI의 도움 없이 내가 짰고, 문서 작성에만 AI를 썼다.

먼저 밝혀 둘 것이 있다. 그때 제출물은 어디까지나 종이 위의 기획이었다는 점이다. 이 글은 그 기획서의 재탕이 아니라, 그 뒤로 아이디어를 실제 시스템으로 구현해 몇 달째 돌리면서 얻은 것들의 기록이다. 상을 받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걸렸다. 서류 위에서는 그럴듯한데, 이게 정말 굴러갈까.

마침 실험 대상이 있었다. 나는 글과 아이디어 공모전에 꾸준히 응모하는 대학생인데, 공모전 준비는 전형적인 반복 사무다. 공고를 찾고, 자격 요건을 대조하고, 주최 측 지정 양식을 내려받아 구조를 파악하고, 초안을 쓰고, 퇴고하고, 한글(HWP) 서식에 옮겨 담는다. 하나하나는 어렵지 않은데 건수가 쌓이면 사람이 먼저 닳는다. 공문과 보고서를 다루는 사무가 대개 그런 것처럼.


2. 활용 방법 하나 — 한 AI에게 다 시키지 않고, 부서를 만들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만능 비서 한 명을 구하는 게 아니라 부서를 짜는 것이었다. 단계마다 담당을 두었다.

수집과 선별은 Claude Code가 맡는다. 스크립트로 공고를 모으고 자격 요건을 기계적으로 대조해서, 자격 미달이거나 AI 사용을 금지한 공모는 이 단계에서 자동 반려된다. 초안 작성은 Claude Opus가 맡아, 요강 분석 결과를 넘겨받아 지정 양식의 항목 순서대로 쓴다. 검토는 별도의 AI가 맡는데, 이 부분은 뒤에서 따로 말하겠다. 조판은 다시 Claude Code의 일이다. 한글 문서 자동화(COM·XML)로 주최 측 서식 파일의 칸을 찾아 본문을 옮겨 넣는다. 포스터나 영상이 필요한 공모는 Gemini가 시각물을 만들고, 그 밖의 자잘한 검증과 보조 작업에 ChatGPT와 Codex를 용도별로 끼워 넣었다.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긴 하지만, 이 중에 전공 지식이 꼭 필요했던 부분은 한글 조판 자동화 정도다. 나머지는 역할을 나누고 순서를 정하는 일, 그러니까 기술이라기보다 조직 설계에 가까웠다.


3. 활용 방법 둘 — 프롬프트보다 서식이 중요했다

처음 벽에 부딪힌 곳은 AI와 나 사이가 아니라 AI와 AI 사이였다. 각자는 일을 잘하는데 인수인계에서 일이 샜다. 앞 단계가 무엇을 어디까지 했는지, 다음 단계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가 대화 몇 줄로는 전달되지 않았다.

해결책은 뜻밖에 관료적인 것이었다. 요구사항 정의서, 작업 지시서, 검증 체크리스트, 회귀 검토 요청서. 회사 결재 문서 같은 서식 네 장을 만들어, AI 사이의 모든 인계를 이 문서로만 하게 강제했다. 작성 담당은 지시서에 적힌 것만 하고, 검토 담당은 체크리스트에 적힌 것만 본다. 수정이 생기면 회귀 검토 요청서가 돈다. 몇 달 운영하며 얻은 결론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AI에게 일을 시키는 기술은 영리한 질문 한 줄이 아니라 빈틈없는 서식 한 장에 가깝다.

그렇다면 서식만 갖추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서식은 사람 조직이 원래 쓰던 물건이니 반쯤은 맞는 말이다. 다만 사람의 사무에서는 서식을 채우고 넘기고 확인하는 절차 자체가 또 하나의 일거리여서 바쁠수록 그것부터 생략됐는데, 지금은 채우는 쪽도 확인하는 쪽도 지치지 않아 같은 절차가 비용이 아니라 처리량이 된다. 서식은 규칙이고, 새벽 세 시에도 그 규칙을 똑같이 지키는 쪽이 AI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이 사무실은 서지 않는다.


4. 활용 방법 셋 — 서로 모르는 사이로 만들어 검증시킨다

AI는 자기가 쓴 글에 후하다. 그래서 쓰는 AI와 검토하는 AI를 분리하고, 검토자는 작성 과정을 전혀 모르는 새 대화에서 원고와 채점 기준표만 받게 했다. 기준 점수에 못 미치면 수정 지시서가 작성 담당에게 돌아가고, 정해진 횟수 안에 통과하지 못한 원고는 보류 표시와 함께 사람에게 올라온다. 검토 규정에는 「없는 경험이나 수치를 지어내면 큰 감점」 같은 조항을 명문으로 박아 두었다. 이 적대적 교차검증이 시스템의 심장이다. 서로 칭찬하는 AI 둘보다, 서로 모르는 AI 둘이 낫다.


5. 전후 변화 — 숫자 몇 개와, 내 일의 정체가 바뀐 것

먼저 시스템 전의 나를 적는다. 혼자 힘으로 응모한 공모는 통틀어 열 건 남짓이었고, 성적은 앞서 말한 장려상 한 번이 전부였다. 찾고, 대조하고, 쓰고, 서식에 옮겨 담는 일을 전부 내 손으로 하던 때의 규모가 그랬다.

시스템을 돌린 뒤의 숫자는 이렇다. 파이프라인이 공고를 수집해 검토 폴더를 만든 공모가 1,089건이고, 그중 자격 대조와 양식 검증을 거쳐 완성 원고까지 나온 것이 192건이다(2026년 7월 기준, 시스템 작업 폴더를 직접 세어 집계한 값이다). 완성 원고 가운데 내가 최종 확인을 거쳐 실제로 접수한 것이 여든 건을 넘는다(8월 중순 기준). 결과가 돌아온 자리에서는 최우수상 한 번, 우수상 두 번, 입선 한 번이 확정됐다(8월 27일 기준). 아직 발표일이 오지 않은 건은 그보다 훨씬 많다. 하루치 처리량은 한 번 재 두었다. 이 글을 손보던 8월의 어느 밤에는 시스템이 열두 번 교대를 돌며 공모 열세 건을 판정 완료까지 밀어 두었다. 파이프라인은 주로 내가 자는 밤에 돌고, 나는 아침에 결과 표를 읽는다.

숫자보다 큰 변화는 내 일의 정체다. 예전의 나는 문장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기준을 정하는 사람이 됐다. 채점 기준표를 고치고, 금지 규칙을 추가하고, 반려 사유를 읽으며 서식을 손본다. 어느 쪽이 더 공부가 되느냐고 물으면, 이쪽이다. 좋은 글의 조건을 AI에게 문서로 설명하려면 그걸 내가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6. 따라 하려면 — 세 가지면 된다

이 방식은 공모전에만 통하는 게 아니다. 보고서 초안, 회의록 정리, 반복되는 문서 검토처럼 단계가 있는 사무라면 어디든 옮겨 심을 수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업무를 단계로 쪼개고 단계마다 담당 AI를 정한다. 둘째, 단계와 단계 사이에 인계 서식을 만든다. 무엇을 넘기고 무엇을 확인하는지 항목으로 적으면 된다. 셋째, 작성과 검토를 분리해서, 검토자는 작성 과정을 모르는 상태로 채점하게 한다. 자동화 스크립트가 없어도 범용 AI 대화 도구만으로 서식과 역할 분담은 오늘부터 흉내 낼 수 있고, 내 경험상 효과의 절반 이상은 거기서 나온다.


7. 윤리와 한계 — 자동화할수록 사람의 서명이 무거워진다

지키는 선을 정해 두었다. AI 사용을 금지한 공모는 시스템이 자동으로 응모 대상에서 뺀다. 규정을 우회해서 받는 상은 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원고에는 없는 경험과 수치를 지어 넣지 못하게 했고, 이 글에 쓴 숫자도 시스템의 작업 폴더와 제출·결과 대장, 야간 운영 기록을 직접 세어 확인한 값만 썼다. 다만 시스템을 만들기 전에 내가 혼자 응모한 건수만은 남은 기록이 없어 기억에 따른 어림이며, 그것도 그대로 밝혀 둔다. 수집 범위는 공개된 공고문으로 한정해 개인정보나 타인의 콘텐츠가 파이프라인에 들어오지 않게 했다. 그리고 이 후기 역시 그 파이프라인의 문법대로 만들어졌다. 내가 겪은 사실과 기준을 정하고, AI가 초안을 쓰고, 다른 AI가 검증했으며, 최종 확인과 제출은 내가 한다.

한계도 그대로 적는다. AI 둘이 나란히 놓치는 오류는 여전히 사람이 잡아야 하고, 서식과 규칙을 관리하는 새 일이 생겼다. 자동화는 일을 없애 주는 게 아니라 일의 자리를 옮겨 놓는다는 것을, 옮겨진 자리에서 배우고 있다.

오늘 아침 결과 표에도 밤사이 처리된 공모 몇 건이 올라와 있었다. 장려상 상장은 서랍 안에 있고, 그 종이 위에만 있던 아이디어는 지금 매일 밤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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